사적 177호 진흥왕릉
사적 177호 진흥왕릉입니다.
경상북도 경주시 서악동에 위치해 있고 김유신장군묘와, 무열왕릉 옆에 있어 찾아가기 쉽습니다.
진흥왕은 교과서에서 알수 있듯이 그가 신라의 전성기를 만든 왕입니다.
어떻게 만들었느냐? 바로 외교와 전략으로 만들었습니다.
우선 선대 왕들이 쌓아온 국력과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백제와의 동맹인 나제동맹으로 고구려가 내분과 양면전쟁으로 피폐되어있는동안 공격하여 경기도 강원도 지역을 뺏고 백제와 나눕니다.
그리고 이때를 기회로 백제는 아예 고구려 수도인 평양까지 진격하려 했지만 신라가 만류하지요.
왜냐하면 백제가 차지한 한강유역을 빼앗기 위해 고구려와 밀약을 맺었기 때문이지요.
당시 나제동맹군이 고구려를 치고 협정으로 얻은 영토를 보면 신라얻은 땅이넓지만 백제가 얻은 땅보다 질이 훨씬 떨어집니다.
백제가 차지한 한강유역은 중국과 활발하게 무역할 수 있는 이점과 비옥한 토지를 가지고 있는 진짜 알짜배기땅이였지요.
그래서 진흥왕은 백제가 방심한 틈을 타서 바로 백제가 차지한 한강유역까지 차지합니다.
뒤통수 맞은 백제는 나라의 국운 까지 걸고 백제,신라,왜 삼국동맹으로 3만명을 이끌고 대야성 전투를 벌였고, 백제가 전투에서 앞서나갔는데, 신라에게 천운이 터집니다. 바로 백제왕인 성왕이 소수병력으로 정찰나가다가 잡힌거지요. 결국 성왕은 참수당하고 백제의 군사는 전멸했다고 합니다.
이 기세를 타서 함경도진출,대가야 멸망들 신라의 전성기를 만들고 각지역에다가 자신의 치적을 남기는 순수비를 남깁니다.
하지만 백제하고 절대적인 원수가 되고 훗날 백제,고구려,왜 삼국연합군에 신라는 김유신이 아니였으면 역으로 멸망위기까지 초래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무덤 역시 김유신장군묘처럼 파보지 않았고, 구전과 기록으로만 추측하는거여서 진짜 진흥왕릉인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