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잡담/일본 역사

1477-1529 백제의 후손, 최초의 천하인 오우치 요시오키 일대기

상상력사전 2019. 5. 3. 04:51

일본 전국시대,

하극상이고 약육강식이며,

어제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되는 피도 눈물도 없는 지옥같은 세상

중앙 정부인 무로마치막부의 아시카가 가문의 영향력이 힘이 약하니 

지방에서 반독립하여 자기가 최고가 되겠다고 서로 싸우고 싸우고 또 싸우고 싸웁니다.

그러다가 수십년뒤인

오우치 가문 문장

오우치 요시오키 15대 당주로 즉위하다.

 

1495년 오우치 요시오키는 아버지를 뒤이어 오우치 가문 제 15대 당주에 즉위 합니다.

오우치 가문은 백제 온조왕의 원손인 마지막 왕자 임성태자의 후손이며, 그는 임성태자의 28대 자손입니다.

https://web.archive.org/web/20130710185049/http://www.nichiren.ac/houzennji/toyotakeifu.htm#

 

오우치 가문은 그가 즉위하기 전부터 강한 가문으로

전 당주 오우치 요시히로는1399년에 함대를 이끌고 쇼군과 맞써 싸울 만큼 강했지만

결국 그 전쟁에서 죽고 맙니다. 결국 오우치 가문은 후퇴합니다.이걸 오에이의 난이라고 부르지요.

 

영토확장

1495년, 오우치 요시오키가 오우치가문의 가주가 되었을때

오우치 가문의 땅은 스오, 나가토, 부젠, 지쿠젠 4국이였는데

그가 즉위한 후 몇 년 지나지 않아 아키, 이와미 2국과 히젠일부를 차지합니다.

그 뒤 전쟁은 계속되지만 쇼군의 중재로

결국 오우치 가문은 규슈 북부 및 주고쿠일부를 세력하에 두었습니다.

1507년, 당시 오우치가문은 6국의 지배자로 일본 전국 최강의 세력이였습니다.

오우치 가문 영토

기나이진출, 막부장악 ,최초의 천하인 탄생

기나이지역은 수도지역을 의미하는 것으로 야마시로,야마토,셋츠,가와치,이즈미 5국을 뜻합니다.

즉 무로마치 막부의 영향이 미치는 지역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1508년, 기나이의 무로마치 막부의 권력자인 호소카와 마사모토가 죽자 세 양자가 내분으로 분열합니다.

요시오키는기회를 놓치지 않고 규슈 북부, 주고쿠 다이묘에게 동원령을 선포, 기나이로 진출합니다.

그 뒤 마사모토의 양자 중 한명인  호소카와 다카구니와 내통하여 그와 연합한 후

마사모트의 양자 중 한명인 호소카와 즈미모토와 전투를 벌이고 승리하여 

수도 교토를 함락시키고 현 쇼군 아시카가 요시즈미를 몰아내고 정권을 차지 하게됩니다.(1508년)

과거 오우치 요시히로가 못했던 것을 오우치 요시아키는 전국최초로 해냈습니다.

그는 우선 쫒겨난 전 아시카가 요시타네를 복직시키고 호소카와 다카구니와 함께 정권을 장악합니다.

이 순간 그는 수도 야마시로를 포함한 7국을 장악한 천하인이 되었습니다.

 

엎치락 뒤치락하는 전황

 

그러나 1510년 아시카가 요시즈미,호소카와 즈미모토의 연합군이 교토 탈환을 목표로공격해 오자

요격하지만 패배합니다. 

1년뒤인 1511년에 아시카가 요시즈미,호소카와 즈미모토의 연합군 또 공격해서 승부를 걸고 반격하지만 

대패하고 교토를 뺏기고 단바로 도주 합니다. 하지만 운좋게도 아시카가 요시즈미 갑작스러운 죽음과

아시카가 요시즈미의 동맹이였던 롯카쿠가문의 배신으로 상황은 뒤바뀌었고

결국 1511년 8월 23일 야마시로 후나오카야마 전투(船岡山の戦い)에서 호소카와 즈미모토을 박살내고

교토를 다시 탈환 합니다. 

그러나 같은 동지였던 쇼군아시카가 요시타네아시카가 요시타네 하고 사이가 계속 안좋아 지고,

게다가 자신이 키나이에 있는 동안 이즈모의 아마고 쓰네히사의 침공으로 

결국 1518년 관직에서 사임하고 키나이를 떠나 자신의 영토로 돌아갑니다.

 

그가 정권을 장악했던 시기는 10년으로 상당히 짧은시기지만

이 시기 만큼은 천하를 재패한 최초의 천하인이였습니다.

 

 

아마고 쓰네히사, 그는 누구인가?

 

아마고 가문 문장

아마고 츠네히사, 아마고 가문은 원래 이즈모,히다,오미,오키 4국의 슈고(지방행정관)였던

쿄고쿠 가문의 가주인 쿄고쿠 마사쓰네의 가신 가문이였습니다.

(슈고는 막부의 임명한 지방행정관 이미지가 있다면)

(다이묘는 독립된 지방군벌의 이미지가 있습니다.)

1478년 그는 아마고 가문의 가독을 상속받고 슈고다이로서 이즈모를 대리경영을 했는데

그가 이즈모의 슈고다이(지방행정관 대리)로서가 아니라 다이묘(지방군벌)로서의 움직임이 있자.

10년뒤, 1488년 그는 슈고다이직을 박탈당합니다만, 하지만 그는 힘을 잃지 않았습니다.

1500년 가문항쟁에서 패해 이즈모로 돌아온 쿄고쿠 마사쓰네와 화해하고

그를 도우면서 자신의 영향력을 넓이다가

1508년 주군 쿄고쿠 마사쓰네가, 손자 기치도지마루에게 쿄고쿠가문의 가주를 넘겨준 후 죽고

아마고 츠네히사는 손자의 후견인이 되었는데, 그 손자가 갑자기 행방불명 된 사건이 터졌습니다.

결국 이즈모 1국은 순식간에 아마고 츠네히사 주인이 되었습니다.

당연하지만 수많은 불만이 터져나왔고 완전히 장악하게 된것은 10년 뒤입니다. 

1511년 대가문인 오우치 가주 오우치 요시오키가 주변 다이묘들은 동원해 같이 상락할때 그도 있었고 전투

에도 참여했다고 합니다.( 기나이침공하고 다른 사건입니다.)

그 뒤 오우치 요시오키가 수도 교토에 있을때, 그 틈을 노려 주위 가문들을 차례 차례 점령하여

주고쿠의 대세력이 됩니다. 그리고 오우치 가문의 영토를 침략하고

이 소식을 듣고 오우치 요시오키는 1518년 기나이에서 오우치 가문으로 다시 돌아와

아마고 가문하고 전투할 준비를 합니다.

 


아마고가문 과 오우치가문 주고쿠를 둘러싼 혈전

 

 

일본의 전국시대는 각 가문들이 전부 쌍무적 계약관계로 

대가문이라는 오우치가문이나, 아마고가문 또한 나라가 아니고 호족 연합체에 불과 하죠

그래서 그들의 주요 분쟁지가 되는 이와미, 아키의 호족들은 살기위해 줄타기식 동맹을 합니다.

 

오우치가문과 아마고가문은 이와미와 아키에서 혈투를 벌입니다.

 

 

1523년 아키국은 오우치가에 종속되어있던 모리가 당주 유키마쓰마루의 숙부인 모리 모토나리와 내통하고 그에게 명령하여 오우치의 가가미 산성을 함락시킴으로서 아키국 대부분을 차지하게됩니다.

하지만 1524년 오우치는 아키 이쓰쿠시마섬,사토가나 산성에서 아마고가문을 격파하고 대세가 다시 기울자

1525년 아키의 호족 모리가문은 다시 오우치에 종속관계를 바꿉니다.

또한 아마고가문은 너무 빠른 팽창정책으로 주변에 적들을 많이 만들어 호키,빈고 2국의 야마나 가문과 싸우게 되고, 아마고가문은 적들에게 둘러쌓여 고립된 상태가 됩니다.

 

 

 

전황이 오우치 가문과의 전투가 유리해질 쯤 향년 52세로 오우치 요시오키는 세상을 뜹니다.

 

 

 

에필로그

후계자 오우치 요시타카는 아버지를 뒤이어 세력을 확장시키고 이와미,아키를 거의다 되찾습니다.

 

 

지도 처럼 동쪽으로 오우치가문 남쪽으로 아키호족연합, 동쪽으로 아시나가문과 호족연합 

삼방향 포위로 이제 아마고 가문의 운명은 촛불신세가 되었지만.........

 

삼국지에서 천하통일한 나라는 위나라도 아니고 촉나라도 아니고 오나라도 아닌 진나라 였습니다,

주고쿠를 통일한 가문은 오우치가문도 아니고 아마고 가문도 아닌

일개 호족이였던 모리가문!!! 이였습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다음 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