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잡담/일본 역사

도쿠가와 이에야스, 자기아들에게 자살을 명하다.

상상력사전 2020. 3. 30. 23:47

 

 

 

훗날 전국시대를 끝내고 일본을 통일하는

마쓰다이라 이에야스(훗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1579년 적장자인 마쓰다이라 노부야스에게 할복을 명하다.

 

 

 

 

이에 1579년 10월 5일 노부야스는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할복한다.

 

 

 

 

 

 

마쓰다이라 이에야스와 아들 마쓰다이라 노부야스,

이들의 운명은 이에야스의 어린시절 인질 생활때 부터 이미 운명은 정해져 있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인질 생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1543년, 마쓰다이라 가문의 적장자로 태어났다.

마쓰다이라 가문은 강대국 이마가와 가문과 신흥 강대국 오다가문의 사이의 미카와 지역의  소규모 가문이였다. (지도 상 초록색 가문)

 

 

 

 

이마가와 가문과 오다 가문간의 알력다툼속에 아버지 마쓰다이라 히로타다는 사망하고,

이에야스는 이마가와 가문의 인질로 데려가진다.

 

 

인질 생활동안, 인질이라는 신분과 반대로 이에야스는 엄청 호화스러운 대접을 받는데,

이마가와 가문의 재상, 타이칸 셋사이가 스승이 되어, 병법과 학문을 가르치고,

 

 

 

이미가와 가문의 다이묘,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조카인 세나히메(쓰키야마)와 어린나이에 결혼까지 한다.

인질생활 도중 첫번째 아들이 태어나는데, 그가 마쓰다이라 노부야스이다.

 

 

 

 

사실상 이마가와 가문의 일원으로 대접받는 이에야스는, 이마가와 가문의 선봉장으로서 명성을 떨치지만,

오케하자마 전투에서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죽는 사태가 벌여지자마자,

마쓰다이라 가문의 본성 오카자키 성으로 입성한다.

 

2018/12/17 - [역사잡담/일본 역사] - 1561년 오케하자마 전투 (오다 가문 3천 vs 이마가와 가문 3만)

 

1561년 오케하자마 전투 (오다 가문 3천 vs 이마가와 가문 3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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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뒤 몇 년간 이마가와 가문과 오다 가문과의 줄타기 외교를 펼치다가, 1561년 이마가와 가문을 배신한다.

 

 

 

 

마쓰다이라 가문이 다시 부활한 것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오다 노부나가의 동맹

빨간색 접시꽃- 오다, 초록색- 마쓰다이라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독립하자마자, 어린 시절의 인연이였던,

오다 가문의 다이묘 오다 노부나가와의 동맹이였다. 

 

이에야스는 어머니의 가문인 미즈노 가문의 중재하의 오다 가문과의 동맹,

훗날 기요스 동맹이라고 불리는 동맹을 체결한다.

 

이에 이마가와 가문은 배신에 대해 분노하고, 인질로 잡혀있던 마쓰다이라 가문의 일원들을 잔인하게 죽이지만, 이에야스의 아내와 아들은 이마가와 가문의 중요한 혈족이기에, 차마 죽이지 못했다.

 

 

그래서 이틈에 이에야스는 이마가와 가문의 일원들을 인질로 잡고,

아내인 세나히메와 아들인 마쓰다이라 노부야스를 인질교환하여 구출해냈다.

 

 

 

 

그리고 오다가문과 마쓰다이라 가문은 결혼동맹을 성사시켰고,

마쓰다이라 이에야스의 아들 마쓰다이라 노부야스와

오다 노부나가의 딸 도쿠히메는 결혼한다.

하지만......

 

 

마쓰다이라 가문의 가정불화

하지만 도쿠히메와 노부야스의 사이는 좋지 않았고,

 

 

이에야스의 어머니 오다이 또한 며느리인 세나히메가

이마가와 가문의 혈족이라는 이유로  증오하여,

세나히메는 1570년까지 본성 오카자키성에 들어갈 수 없었고, 성 밖의 절에서 유폐생활을 당했다.

 

 

이마가와의 피가 흐르는 세나히메와 마쓰다이라 노부야스는

이런 상황에 고통을 받지 않을 수없었는데,

이러한 시집살이는 세나히메에게 엄청난 고통이였고,

이 고통을 며느리인 도쿠히메에게 풀어버렸다.

즉 내리갈굼 ㅡㅡ

 

훗날 이것은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킨다.

 

 

 

 

숙적 다케다 신겐의 상락

 

그렇게 동맹을 체결하고 마쓰다이라 가문은 이마가와 가문의 대결한다.

 

그러던 중 이마가와 가문의 동맹이였던 북쪽의 다케다 가문의 다케다 신겐은 

이마가와 가문의 약화된것을 틈타, 배신하고 이마가와 가문을 병합한다.

 

이로 인해 마쓰다이라 가문과 다케다 가문은 대립하는데,

다케다 신겐의 천재적인 군략으로 인해, 이에야스는 똥지리면서 까지 도망치고,

오다 노부나가는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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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3년, 미카타가와라전투- 도쿠가와,오다 가문 연합군 1만1천vs 다케다 가문 2만7천

미카타가와라 전투는 1573년 1월에 오다, 도쿠가와 연합군과 다케다 가문과의 도토미(시즈오카) 지역에서 싸운 회전들을 가리킨다. 오다 노부나가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인생 최대의 위기였던 사건이였다.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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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아들의 대립

 

마카타가와라 전투 이후,

마쓰다이라 가문의 최대 숙적 다케다 신겐이 사망하고,

뒤이은 후계자 다케다 가츠요리는 맹렬하게 도쿠가와 가문과 대립한다.

 

이때 노부야스의 정처이자, 오다 노부나가의 딸, 도쿠히메는

남편 노부야스와 시어머니 세나히메의 내리갈굼을 못참고,

아버지 오다 노부나가에게 12조목의 편지를 보낸다.

 

 

편지의 내용은 남편 노부야스와 세나히메가 다케다 가문과 내통하고 있다는 내용인데,

 

 

이말은 즉 남편과 시어머니는 반역자이니, 죽여달라는 내용이다.

 

현재까지 편지는 수정되거나,조작되었다는 의견도 있는데,

당시 상황을 보면, 편지 내용의 신뢰도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오다 노부나가는 이 편지를 보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노부야스의 할복을 요구하고,

이에야스는 노부나가의 요구를 빙자한 명령에 의해 자기 후계자인  노부야스에게 할복명령을 내린다.

 

 

 

할복명령의 2가지 설

마쓰다이라 노부야스의 할복 사건은 2가지 견해가 있다.

 

현재 통설은 동맹 가문 오다 노부나가의 요구를 빙자한 명령해 의해 어쩔 수 없이 죽인 설이다.

 

노부야스는 무용이 뛰어난 장수로서, 다케다 가문과의 전투 때마다 활약하여,

아버지 이에야스 로부터 노부야스만 있으면 마쓰다이다 가문은 그 어떤것도 두렵지 않다 라고 칭찬 받았다.

 

이에 동맹 가문 오다 노부나가는 자기 딸 노부히메의 12조목의 편지를 받고도, 근거가 없음을 알지만,

이를 이용해 자기 동맹 가문 마쓰다이라 가문의 힘을 약화 시키기 위해서,

이에야스에게 노부야스 할복 명령을 내리고, 이에야스는 어쩔 수 없이 할복명령을 내렸다는 설이다.

 

 

일본 유명 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이 설을 따라서 전개 된다.

대충 내용은 노부나가가 할복명령을 내리기 전에 노부나가와 같은 동맹군이라는 위치를 지키기 위해서 먼저 할복시키려 하지만, 아들을 사랑했고, 어떻게 해서든 가신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어서 살릴려 하지만, 실패하고 할복시킨다는 내용이다.

 

 

다른 견해는 진짜로 아버지와 아들 불화가 심했고, 이에 이에야스의 의지로 할복시켰다는 설이다.

 

전국시대는 피도 눈물도 없어서,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고,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는것이 

부모자식간의 권력다툼은 일상생활이였다.

 

그래서 진짜로 아들과의 불화로 인한 이에야스의 의지로 할복시켰다는것인데,

이에 따르면 노부나가의 요구는 노부야스의 할복이 아니고, 이에야스의 뜻을 수용한다는 것이였고,

 

노부나가가 언급하지 않은 세나히메까지 같이 처리한 것은,

할복이 이에야스의 의지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노부야스를 성에서 추방시키고 할복명령을 내릴때 까지, 가신들에게 노부야스와의 연락을 금했고

노부야스의 가신들에게 노부야스와 내통하지않겠다는 각서까지 강요했다.

 

그리고 이에야스의 일화중 차남 유키  히데야스와 6남 마쓰다이라 다다테루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외모가 노부야스를 닮았다는 이유때문이다.( 지 아들이니까 닮았겠지 ㅡㅡ)

 

 

 

 

 

마쓰다이라 노부야스, 자결하다.

 

 

두 가지 설이 어쨌든, 마쓰다이라 이에야스는  아들 노부야스에게 할복 명령을 내리고

이에 노부야스를 스스로 할복한다. 그때 그의 나이는 21살이였다.

 

 

뒷 이야기

마쓰다이라 노부야스 자결 원인이 불화였든, 아니면 노부나가의 명령이였든

노부야스가 죽은 후 이에야스는 자기 아들 노부야스를 많이 그리워 했던것 사실이다.

 

훗날 세키가하라 전투때 셋째 아들이자 후계자로 낙점되었던  도쿠가와 히데타다가 시원치 않자,

노부야스가  살아있었다면 이러지 않았을걸 이라면서 엄청 핀잔 주었다.

 

도쿠가와 가문의 중요 장수였던 사카이 다다쓰구가 자기 아들의 영지가 적은것에 대해 불평하자,

너도 자식 사랑을 아냐면서 대놓고 핀잔 주었다.

사카이 다다쓰구는 노부야스를 시원치 않게 봤고, 할복명령을 내린 오다 노부나가에게 변명하러 사신 중 한명이였는데, 제대로 해명안하고 돌아왔고, 이에 이에야스는 가슴에 묻어두고, 나온 일침이였다.

 

또한 세키가하라 전투 전야에 노부야스의 손녀딸을 주요 다이묘 후계자와 결혼 시켰다.

노부야스가 진짜 아버지를 배신한 반역자라면 노부야스의 핏줄을 끊어버리거나, 잊혀지게 만들 수있을 텐데, 주요 다이묘 후계자와 결혼 시켰다는 것은, 노부야스의 혈통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즉 노부야스는 죽어도 내 아들이라고 인정했다는 소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