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잡담/기타 역사

캄보디아의 세종대왕, 자야바르만 7세

상상력사전 2019. 6. 17. 23:54

 동남아시아 전역을 지배했던 크메르 제국의 시기는 초기, 중기,후기로 구분 되는데

자야바르만 7세의 시기부터 크메르제국 후기로 구분합니다.

 

즉 자야바르만 7세때 부터 크메르 제국의 황혼기라고 할 수 있지요.

 

 

자야바르만 7세

자야바르만 7세는 캄보디아 여론조사 매번 1등을 차지할정도로 캄보디아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왕입니다.

우리나라 친다면 세종대왕으로 캄보디아에서 가장 위대한 왕이며 존경받는 왕입니다.

 

자야바르만 7세는 특이하게도 당시 크메르인들과 다르게  종교가 힌두교가 아닌 불교인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성장과정에서 불교인인 아내와의 만남이 그의 종교관을 바꾸어 불교로 개종했는데, 당시에는 엄청 힘든 선택이였지만, 이러한 선택은 그를 캄보디아에서 오랫동안 사랑받는 왕으로 만들었습니다.

 

 

 

 

자야바르만 7세의 성장과정

 

자야바르만 7세는 크메르 제국의 황제, 다란인드라바르만 2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다른 크메르 왕족과 마찬가지로 힌두교인이였지만, 앞서 말했듯이 불교인인 아내, 똑똑하고, 강직한 자야라자데비 공주와의 결혼은 그에 인생에 있어 크나큰 전환점이 되고 불교인인 그녀와의 결혼을 통해 그는 종교를 불교로 바꿉니다.( 왜냐하면 아내가 죽었슴다. ㅠㅠ )

 

자야바르만 7세가 왕의 아들로 태어나 성장하고 있었을의 크메르 제국은

 크메르 제국의 최전성기를 이륙한 수리야바르만 2세 사후의 시기로

제국은 점차 쇠퇴해 가던 시기였습니다.

 

제국이 분열하기 시작하고, 다른 민족이 침략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다란 인드라바르만 2세(재위 1150~1160)가 죽고, 그의 형인 소바르만 2세(재위 1160~1166) 즉위했을 때 그는 베트남 남부에 있는 참파족 정벌의 사령관으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왕권 경쟁에 뛰어들어 괜히 형제들과 싸우기 싫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트리부바나디티아바르만(재위 1166~1177)의 궁정 쿠데타의 소식에 참파족 정벌을 중단하고 앙코르로 돌아갔지만, 이미 형 야소바르만 2세는 죽고 그가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는 고향인 캄퐁 스바이로 돌아와 숨죽이며 기회를 노립니다.

캄퐁 스바이

 

5년 뒤 참파족이 메콩강을 이용해 수도 앙코르 기습공격으로 크메르 제국의 황제인 트리부바나디티아바르만이 죽고 수도 앙코르를 차지합니다.

이로 인해 크메르 제국은 무주공산이 되고 찬란했던 제국의 수도 앙코르는 참파족에게 지배하에 들어갔습니다.

 

당시 원나라 사신 주달관의 진랍풍토기 기록에 보면 제국의 수도 앙코르의 도탄에 빠진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길을 가다가 크메르인이 보이면 붙잡고 배를 갈라 쓸개를 꺼내고 1천 개가 모이면 참파왕에게 보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수도가 참파족에게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자야바르만 7세는 왕이 살해된 후 무주공산이 된 크메르 제국을 다시 살리기 위해 고향인 캄퐁 스바이에서 병력을 모읍니다.

 

 

 

그리고 5년 뒤, 참파족을 앙코르에서 몰아냈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몰아낸 것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앙코르에서만 몰아낸 것이지 메콩강 중부에서 참파족이 병력을 다시 집결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결전을 벌이는데 이것이 톤레샵 해전입니다.

 

 

 

 

각 나라의 운명을 건 톤레삽 해전은 모든 것을 건 총력전이었으며 당연하게도 각국의 왕들도 참여한 데스매치였습니다.

여기서 자야바르만 7세는 승리하고 참파족왕을 죽이며 완전히 몰아내는 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는 다시 태어난 크메르 제국의 황제가 됩니다.

 

그는 30년간 크메르 제국을 다스리는데 이때가 크메르제국 문화의 황금기 시대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그는 불교인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의 복지활동에 많은 신경을 썻습니다.

백성들의 민생사업에도 관심을 기울여 대규모 민간시설 확충, 100개가 넘는 병원 건설, 100개 넘는 숙박시설 건설 등 민생사업을 펼쳐 백성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왕권강화를 위해 대규모 건축을 벌여 거대한 도시인 앙코르 톰을 건설했습니다.

거대도시 앙코르톰은 기록에 따르면 약 20만명이 동원되어 건설되었는데,

역사학자들이 역추산한 결과 약 12세기에 앙코르 톰에 70만명의 인구가 살았다고 합니다.

이 수치는 13세기 프랑스 파리에 10만명, 고려 수도 개경에 10만, 당시 세계 1등 국가 송나라 수도 개봉에 80만명의 인구가 살았던걸로 볼때 엄청난 숫자입니다.

 

로마의 도로처럼 1200km가 넘는 고속도로를 건설하였으며,

그의 정예부대는 활발한 전쟁활동으로 다시 제2의 크메르 제국의 영광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합니다.

 

 

 

자야바르만7세때 다시 부흥시킨 크메르제국 영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