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이야기 1551년 아버지 오다 노부히데의 뒤를 이어 17세의 나이로 오와리의 다이묘가 된 오다 노부나가 하지만 오다 노부나가의 오다 가문은 분가로서 격이 떨어졌고, 노부나가가 가문을 이었을때는 가문이 쇠퇴되어있었으며, 노부나가 성향 자체가 혁신적이고 합리적인 성향이라 보수적인 지배층들의 불만을 많이 받았다, 그리하여 오와리는 내분과 분열이 일어났지만, 8년뒤인 1559년, 노부나가는 오와리통일을 성공한다. 그러나 1561년 남쪽의 미카와, 도토우미, 스루가 3개국 지배자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북쪽의 다케다 가문, 동쪽의 호조가문과 삼국동맹을 맺고, 올인병력 3만을 이끌고 오와리를 침공한다. 당시 이마가와의 미카와,스루가,도토우미3국의 석고량은 60-70만으로 노부나가의 오와리 석고량 57만과 비슷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