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잡담/일본 역사

1573년, 미카타가와라전투- 도쿠가와,오다 가문 연합군 1만1천vs 다케다 가문 2만7천

상상력사전 2019. 4. 11. 01:10

 

 

미카타가와라 전투는  1573년 1월에 오다, 도쿠가와 연합군과 다케다 가문과의 도토미(시즈오카) 지역에서 싸운 회전들을 가리킨다.

오다 노부나가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인생 최대의 위기였던 사건이였다.

 

 

 

 

배경

 

일본 최강 가문 미요시 가문의 몰락과, 오다 노부나가의 상락

 

 

노부나가의 선구자라고 재평가받고 있는 미요시 나가요시에 의해,

그동안 일본을 지배하던 무로막치 막부는 미요시 가문의 세력권 안에 들어간다.

 

미요시 나가요시의 사후 미요시 가문은 쇠퇴하기 시작했고,

이를 기회로 무로막치 막부의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테루는 쇼군의 권위를 회복시키고자 한다.

 

이러한 행동에 1565년에 미요시 가문의 중신인 미요시 삼인방은 막부를 기습해,

쇼군 아시카가 요시테루를 살해되고 정권은 뒤집는데 이를 에이로쿠의 변이라고 한다. 

 

 

 

 

 

이때 쇼군 아시카가 요시테루의 동생 아시카가 요시아키은,

변을 피해 아사쿠라 가문을 의지하고 아사쿠라 가문에게 상경요청을 하지만,

아사쿠라 가문 다이묘 아사쿠라 요시카게는 상경 의지가 없었고,

아사쿠라 가문의 아래쪽에 위치해 있던 오다 가문의 다이묘, 오다 노부나가를 찾아간다.

 

 

 

 

오와리, 미노 2국 다이묘 오다 노부나가는 오와리의 노비 평야의 기름진 땅으로,

강력한 군대를 양성중이었는데,

때마침 아시카가 요시카가가 와서 상경 요청을 하니

오다 노부나가를 이를 받아 드리고,

1863년 수도 상경에 들어간다.

 

 

 

상경하기전 오다노부나가의 영토 초록색은 동맹군

노부나가가 교토로 상경전을 펼쳤을 당시,

천하의 세력이었던 미요시 가문도 쇠퇴하고 있었고, 내분으로 엉망진창이었기에

손쉽게 교토를 손에 넣고 상경을 끝냈다.

 

 

 

 

노부나가가 상경후 영토

상경전이 끝났을 무렵.

오다 노부나가는 7국을 가진 천하인이 되었다.

이는 일본 최강 가문이 되었다는 소리이다.

그러나.................

 

 

 

아시카가 요시아키의 배신

 

노부나가의 상경의 성공으로 아시카가 요시아키는 쇼군으로 옹립되었고,

그는 무로막치 막부 마지막 14대 쇼군으로 취임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곧 노부나가와의 알력 다툼과 쇼군과 노부나가의 세력다툼으로 둘은 원수가 되었고

국 아시카가 요시아키는 1571년 노부나가 토벌령을 발령한다.

 

이에 주변 다이묘들이 쇼군의 명령을 받들고 포위망 동맹을 결성했는데

이것을 역사학자들은 1차 노부나가 포위망 부른다. 

 

 

 

 

1차 노부나가 포위망 당시 일본 지도.

 

 

 

 

 

다케다 신겐의 상락준비

 

1차 노부나가 포위망 동맹의 맹주는 동쪽의 다케다 가문의 가주 다케다 신겐이었다.

 

다케다 신겐의 다케다 가문은 포위망 동맹 중 가장 강한 세력이었고,

노부나가의 오다가문이 1국만 보유하고 있을때, 다케다는 3국을 가진 대가문이었지만,

 

북쪽의 우에스기 가문과의 계속되는 싸움은 큰 전력 소모를 불러 일으켰고,

또한 대가문으로 둘러싸여 있어 세력 확장이 어려웠으며,

다케다 3국은 산악지역이어서 석고량이 나오지 않아 국력이 약했다.

 

이러한 이유로 다케다 가문이 3국으로 머물고 있는 사이,

노부나가의 오다 가문은 7국을 가진 일본 최강 가문으로 성장했다. 

 

다케다 가문은 오다 가문과 동맹 상태였지만,

노부나가 포위망 동맹이 체결되었을 때부터 바로 깨고 전쟁상태에 들어갔다.

 

왜냐하면 다케다 신겐이 생각하기로는,

오다 노부나가를 역전시킬 찬스는 지금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다케다 신겐 본인은 나이가 너무 먹어 노쇠했고,

중병에 걸려 오늘내일하는 상태였다.

 

오다 노부나가가 상경하여 교토로 들어가 주변 다이묘 하고 싸우고 있는 지금,

오다 가문의 본거지인 미노, 오와리는 사실상 빈집 상태인 지금이야 말로,

다케다의 마지막 역전의 찬스!!!!!

 

그래서 다케다 신겐은 바로 전쟁준비에 들어갔다.

 

첫번째로, 위쪽 숙적 우에스기 가문과 동맹, 동쪽으로 호조 가문과 동맹을 맺음으로써 후방을 안정화시켰다.

이로서 병사를 한 곳으로 집중시킬 수 있게 되었다.

 

두번째로, 다케다 가문은 중앙집권체제가 아닌 연합 호족 체제이기 때문에,

호족들에게 많은 혜택을 주고서 올인 병력을 이끌었다. ( 이 폭탄은 후계자가 전부 받는다ㅠㅠ)

그 숫자는 3만 2천 명

 

세번째로 오다가문의 동맹 가문 마츠다이라 모토야스(도쿠가와 이에야스)과 외교전을 펼쳤다.

 

마츠다이라 가문은 바로 오다가문 옆에 있어서 마츠다이라 가문을 격파하지 못하면 오다 가문의 땅도 밟을수 없다. 

그리하여 마츠다이라 가문과 외교전을 펼쳐, 마츠다이라 가문이 오다 가문을 배신하길 원했지만,

끝내 마츠다이라 가문은 오다 가문과의 동맹을 지켰기에 실패로 끝났고, 

마츠다이라 가문도 상락하면서 같이 정리하기로 정한다.

 

그렇게 다케다 신겐 상락 준비를 끝내고, 인생 마지막 출정을 시작한다.

 

 

전략목표

 

다케다 신겐(무전신현)

 

다케다가문의 전략은

오다 노부나가가 동맹군을 이끌고 신겐을 막으러 올때까지

최대한 많은 영토를 차지하는것이다.

 

다케다 신겐은 이제 늙었고, 중병에 걸렸으며,

다케다 가문은 오로지 그의 카리스마로 운영되는 나라이다.

이것이 마지막 기회이고 더이상 기회는 없음으로 이 출진에 모든것을 걸어야한다.

 

전국의 다이묘들이 오다 노부나가를 포위하고 있는 지금,

노부나가는 그들을 상대 한다고 병력을 뺄 수가 없다.

 

전국 다이묘들이 시간을 최대한 끌어주기를 바라면서 사실상 빈집털기를 시행하고 있음으로,

다케다 신겐의 전략은 짧은시간내에 최대한 영토많이 차지하는 것이다.

 

만일 오다가문의 동맹 가문, 마츠다이라 가문을 격파한다면,

그 뒤로는 오다 가문의 본거지인 미노와 오와리인데 사실상 빈집상태 이므로,

이로인해 손 쉽게 오다 가문의 영토를 점거할 수있으며,

이는 오다 노부나가의 숨통을 끊어놓는 일이다.

 

다케다 신겐의 전략이 이루어진다면,

오다 노부나가도 획득했던 영토를 밷어서 라도 본거지로 돌아와야하고,

그렇다면 이제 오다노부나가는 독안에는 쥐새끼 신세가 되며,

포위망 맹주인 다케다 가문이 천하의 주인이 되는것도 시간문제이다.

( 실제로 오다 노부나가도 다케다신겐이 쳐들어오고있다는 소식만으로 본거지인 미노로 돌아갈것을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도쿠가와이에아스(덕천가강)-

마츠다이라 가문의 전략은 오다 가문의 동맹군이 올때까지 최대한 시간을 끄는것이다.

 

동맹군 오다 노부나가는 다케다 신겐보다 많은 병력을 동원할 수있지만,

지금 당장의 대규모 지원군은 반란과 포위망때문에 기대할수 없다.

만약 마츠다이라 모토야스가 여기서 격파당한다면,

그 뒤로 사실상 빈집상태인 오다 가문의 본거지 오와리,미노는 다케다에 손에 들어가게 되는것이고,

그러면 오다가문은 여기서 멸문당할 가능성 무척 높다.

모토야스 본인은 다케다 신겐에게 모든것이 딸리지만 그는 어떻게 해서든 해야한다.

 

 

 

 

 

 

미카타가하라 전투 전개

신겐의 전략목표를 보았듯이, 빈집털기이기때문에 최대한 빠른시간에 영토를 장악해야한다

 

다케다 신겐의 총 병력은 3만 2천으로 한 곳으로 모아서 가는것은 비효율 그 자체이기에 그는 3방향으로 나누어 침공했다.

미노지역과 미카와지역에 각각 5천씩 별동대를 보냈고, 본대병력은 2만 2천명이였다.

 

도쿠가와 이에아스는 올인 병력 1만 5천을 모았지만,

3곳의 방향에서 쳐들어 오니, 제대로 막을 수가 없었다. ㅠㅠㅠ

 

급한대로 본거지인 미카와 지역 방어에 병력 절반을 할당하고, 

나머지 병력으로 나머지 지역을 방어하지만,

오다, 도쿠가와 영토가 차례 차례 함락되어간다. 

 

 

 

그리고 도쿠가와는 그토록 바랬던  오다 노부나가의 지원군이 도착했는데,

그 숫자는 겨우 3천명이였다.

 

도쿠가와가 다케다를 막지 못하면,

그 뒤로  오와리와 본진인 미노까지 전부 함락 일보직전인데,

이런 위기상황에서 병력 3천도 겨보낼 정도로 노부나가에게 상황이 안좋았다. 

 

도쿠가와는 첩자를 통해 다케다군이 본성인 하마마쓰성까지 도달했음을 알았고,

 

곧 공격할 것이라 생각하여,

하마마쓰성에서 병력 1만1천( 병력 8천+오다 동맹군 3천) 농성을 준비한다....

 

 

 

 

 

 

그런데........................

 

 

 

 

 

 

 

 

 

지나가겠습니다.^^

 

다케다신겐은 하마마쓰성을 그대로 통과할 생각으로,

하마마쓰성 위에 있는 미카타가하라 평원을 통과하려했다.

 

이게 엄청난 신의 한수인것이,

노련한 전략가 다케다 신겐답게 굳이 거성 하마마쓰성에서 공성전 할 필요 없이,

마카타가하라 평원을 지나간다는 선택을 함으로서 도쿠가와 한테 선택지를 강요했다.

 

나와서 전투할것인가?

아니면 성에 틀어박혀서 우리가 지나가는것을 보고만 있을것인가?

 

 

나와서 싸운다는말은, 

도쿠가와가 싸움에서 유리한 거성 하마마쓰성에서의 공성전이 아닌

다케다 군대가 싸움에서 유리한 평지에서의 전투를 의미한다는것이다.

 

즉 도쿠가와 입장에서 성밖을 나가서,

급조된 병력으로 싸운다는 말은 90퍼 지고 들어간후, 전투한다는 뜻이다.

 

성에 틀어박혀있는다는것은, 

이 말은 다케다 군대를 그냥 지나치게 해준다는 말인데,

일본 전국시대는 봉건시대로서 영주와 영주가 서로 계약을 통해 지배체제를 유지하는데,

지나가게 해주겠다는것은 하마마쓰성 위의 지역의 성들의 방위계약을 위반한다는 것이다.

 

안그래도 대규모의 다케다군대가 침공하는데,

어느 성주가 계약도 안지키는 도쿠가와 가문을 위해 충성을 바치면서 목숨걸며 싸울까?

 

설사 싸운다고 하더라도 하마마츠 성에 도쿠가와 가문의 올인 병력이 있는 이상

다케다가 위쪽으로 가버리면,위쪽지방의 성들은 다케다군들을 막을 수가 없다.

 

즉 성에 틀어박혀있는말은 최종적으로 도쿠가와 가문의 패배이고,

오다가문의 대위기를 방조한다는 것으로 사실상 항복이나 다름없는 소리이다.

 

이 소식을 들은 젊은 장수 도쿠가와 이에아스는,

지는걸 알면서도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출진한다.

 

다시말하지만, 도쿠가와 병사들은 급조로 징병된 병력으로 다케다 병력에 모든면에서 딸린다. 

도쿠가와를 칭찬하는 매체에서는 사무라이의 의리니 뭐니 하지만 그 의리 어쩌구 때문에 뒤지는거는 힘없는 백성들이다

 

미카타가하라전투 

 

손자병법에 따르면 승패는 싸우기전에 결정된다고 했다. 

손자병법을 애독하고 거기서 나오는 단어인 풍림화산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군기를 만들어 전국를 누비던 다케다 신겐은 손자가 말한대로 전투하기전에 전투에서 승리를 결정했다.

 

다케다의 2만 7천에 맞서서,

거성을 버리고 1만1천의 도쿠가와 군대가 평지에서 싸우러 와준다고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진짜 얼마나 기뻤을까?

 

다케다 신겐은 도쿠가와가 성밖으로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물고기 모양의 진형인 어린진 진형을 치고 도쿠가와를 기다린다.

 

미카타가하라 평야에 도착한 이에아스는,

신겐의 어린진 진형을 보자마자 포위섬멸할 목적으로,

이순신장군이 쓴걸로 유명한 학익진을 펼친다.  

 

학익진                                                              어린진 

학익진은 학이 날개를 펼친 모양 같다해서 학익진인데,

다수가 소수를 포위섬멸할때 주로쓰는 진법이다.

 

이순신,한니발 같은 명장이 주로 썻는데 보면 무적의 진법 같지만,

학익진에는 엄청난 단점이 2가지이 있다.

 

첫번째는 중앙이 노출된다는 점이다.

전투에서 사령관이 죽으면 승패가 결정나기에 무조건 중앙은 보호해야 하는데,

학익진은 날개처럼 펴진 진이여서, 오른쪽이나, 왼쪽날개를 통한 중앙돌파로 역관광 당하기 쉽다.

그래서 학익진을펼칠때는 반드시 맞서 싸우는 적보다 다수여야만 하며,

그렇지 않으면 중앙괴멸당하기 십상이다.

 

두번째로는 측면노출이 된다는 점이다.

학익진은 오로지 앞에있는 적을 포위섬멸하기위한 진법으로,

뒤에서 공격당하면 답이 없기에 그쪽에도 하나하나 예비대를 배치해야하며,

그렇기에 많은 훈련과 숙련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학익진은 상대보다 숙련된 다수의 병력이 사용해야만 효과를 발휘하는 진법이다.

 

 

 

어린진은 물고기 비늘 형태의 반원 형태의 진인데, 소수가 다수를 공격할때 주로 쓰는 진법이다.

 

 

 

당시 미카타가하라 전투 배치 파랑(도쿠가와) 빨강(다케다)

 

 

위에 진을 보면 알겠지만, 뭔가 이상하지않은가? 그렇다 서로 정석과 반대로 진법을 썻다.

다케다군대는 공격적인 군대여서  그렇다 치고, 도쿠가와는 해서는 안되는 진법을 친것이다.

 

고대나 중세전투에서 소수의 병력으로 다수의 병력을 이기는 확실한 방법은 바로 사령관 모가지를 따는것

이다.

 

실제로 오다 노부나가도 오케하자마전투에서 3천명으로 이마가와의 3만명의 군대를 다이묘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목을 따는것으로 승리하지 않았던가?

 

도쿠가와는 병력도 딸리고, 전법, 훈련도도 딸리는데 평지에서 질수밖에 없는 싸움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다케다 신겐의 모가지를 목표로 삼아서 공격했어야 했고,

그럴려면 지금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인 어린진을 쓰는게 정석이였다.

그런데도 도쿠가와 이에아스는 학익진을 펼친다. 그에게 이순신처럼 무언가 계책이 있는것일까?

 

 

당연하지만 그런것은 존재하지않고,

신겐은 위에서 설명했던 학익진의 문제점을 이용해 2시간만에 일방적으로 개박살 내버렸다.

계책같은건 없었고 학익진을 펼친건 이에야스의 경험부족이 낳은 실수이며,

교전비1:10 로 전국시대 전투 사상 전무한 결과를 나왔다.

다케다군은 사실상 피해없이 건재했으며, 이에야스군은 완전 소멸했다.

이에아스 본인도 도망치면서 얼마나 무서웠는지 바지에 똥지리며 도망쳤다.

전투가 밤에 일어나서 다행이지 낮에 일어났으면 이에야스는 상황을 봤을때 확실히 죽었다.

 

똥지리고 무서운 모토야스

마츠다이라 모토야스는 이 사건을 교훈 삼기위해 화가를 불러 그 당시 상황을 그리게 했는데 그 그림이 위 그림이다.

 

그 뒤 하마마쓰성으로 도망쳤는데, 그대로 함락될 위기를 공성계를 활용해서 성문을 활짝열고 성 안의 불들

을 환하게 비춤으로서 다케다군이 오히려 의심을 사게해 함락을 모면했다.

 

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에서는 당시 상황을 성으로 돌아와 태연하게 물 말은 밥 두공기 싹비우고 병사를 

모으고 평온한 표정으로 잠을 잤다는 식으로 묘사되는데....

 

똥지린 양반이 그럴리가.... 아마  덜덜 떨면서 잠을 못자서 뒹굴뒹굴 거렸을것이 뻔하다.

실제로 오다 노부나가도신겐이 쳐들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잠을 못자서 뒹굴뒹굴 거렸다.

 

결과

다케다군 피해 전무 및 다케다 신겐의 전략목표 이상 무

오다,도쿠가와 연합군 궤멸, 도쿠가와 멸망 혹은 항복의 코앞

 

공성계로 도쿠가와의 본성 하마마츠성의 함락은 면했지만, 도쿠가와,오다연합군이 소멸했다.

더 이상 신겐의 빈집털기를 막을 병력은 더이상 없다. 신겐은 다음 공격목표로 하마마쓰성이 아닌 미카와

노다 성을 공격하고 1개월뒤 함락 시킨다.

 

신겐은 하마마쓰을 제외한 도토미 전지역을 제패,

그리고 노다성과 나가시노성을 차지했다. 

이에아스는 포위되어있어 조만간 잡힐것이고

이제 조금만 진격하면 미카와, 그다음 오와리 그다음은 오다노부나가의 본거지 미노이다.

이제 천하인까지 얼마 안남았고, 오다 노부나가와의 최종 전투를 위한 병력도충분하다.

다케다 신겐은 자신이 천하인이 되는 구상을 하고 언제나 처럼 잠을 청하는데......

 

 

몽환과 같은 꿈

 

 

신겐은 병으로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고 사령관을 잃은 다케다 군은 그대로 철수 했다. 향년 53세.

신겐이 죽은뒤인 신겐의 네번째 아들인 다케다 가쓰요리는 후계자가 되어 뒤를 있는데 그의 나이는 불과

27세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