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잡담/한국 역사

안중근의 흑역사- 영산전투

상상력사전 2019. 4. 30. 13:42



영산전투는 1900대 에 연해주에서 안중근 독립의병부대와 일본군이 싸운 전투 입니다.

그런데 이 전투가 안중근의 어이없는실수때문에 졌는데,

사건의 내용을 말하기 전에

이 사건을 이해하려면 당시 상황을 이해 해야 합니다.

당시는 제국주의 시기로 서양인들이 동양인들을 약육강식의 논리로 식민지화 하여 침탈했지요.

실제로 아프리카, 인도, 동남아가 식민지지배당했고 중국이 갈갈이 찢겨나갔습니다.

그래서 서양의 식민지 지배에 저항하기 위해,

같은 문화인 한중일이 맞서야한다(아시아주의) 라는 의식이 생겨났습니다.

여기에 당시 빠른 개항과 발전으로 선진국으로 향해 가고있던 일본이 이 논리를 받아드리고 선동하고

여기에 호응하던게 당시 지식인들인데,

대표적으로 일본인의 정신적 지주인 후쿠자와 유키치를 지지자로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나 실패한 김옥균이라던지,

 

학교 교과서에서도 배우는 독립협회의 지식인들이 대표적인 친일파였죠.





이때 친일파는 지금처럼 나라팔아먹는 매국노의 의미가 아니고 "일본과 친하게 지내서 서양에 저항하고 같이 잘먹고 잘살자" 대충 이런 아시아주의의 논지 입니다.



그래서 당시 지식인 하면 대부분 친일파 였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서양 열강세력이 이권침탈이 극에 달해서 금광이며 돈되는것은 다 쓸어가던 시기였거든요.



안중근도 이중에 한 사람이였습니다.

실제로 완성되지는 못했지만 감옥에서 적은 그의 저작 동양평화론에 보면 한중일이 잘지내자는 아시아주의의 생각이 담겨 있지요.

하지만 일본은 알다시피 서양 제국주의와 마찬가지로 자기 같은 동양민족을 식민지 삼아 침탈하여 발전하고싶을뿐 아시아주의 같은건 생각도 안하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서양제국보다 심했으면 더심했지 악랄하게 수탈했죠 ㅠ


다시 영산전투 참패 원인으로 돌아가서

1900대쯤 되면 슬슬 청일 전쟁도 이기고 러일전쟁도 이길때쯤 일본이 본색을 들어되고 조선을 대놓고 침탈하려는 과정입니다.
이때 많은 지식인들이 속았음에 분노하고 여기에 저항했는데 안중근 역시 저항하여 총들고 무장투쟁에 참여합니다. 
그러나 그는 순수한 사람이였을까요.

앞선 두번의 전투에서 승리후 일본군 포로에게 아시아주의 이론을 설파하고

일본으로 가서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려달라고 풀어줍니다.


왜냐하면 당시 안중근 생각은 일본이 진정으로 아시아 주의여서 같이 잘먹고 잘살려 했는데,

군부독재세력이 지배하고 있어서 잠시 잘못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내부에 진실을 알려주면 모든게 해결 될꺼라 생각했지요.

 



하지만 돌아온것은 당연하게도대규모 일본군 부대였고

결국 위치를 들키게 된 독립군은 영산전투에서 참패합니다.

순수한사람이 분노하면 무섭다고 그는 결국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로서 일본의 부당함과 한국의 독립의지를 전세계에 표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