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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112호 감은사지 동,서 3층석탑와 문무대왕릉

상상력사전 2020. 3. 11. 16:46

 

 

감은사지 동,서3층석탑

(East and West Three-story Stone Pagodas at Gameunsa Temple Site, Gyeongju)

 

감은사지 동,서 3층 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인 신문왕2년(682)에 세워진 사찰이다.

감은사지 동,서 3층 석탑은 경주 양북면 용당리에 위치해 있는데

다른 경주 유적들처럼 경주 시내가 아닌 홀로 바닷가에 떨어져 위치해 있다.

 

 

 

그 이유는 원래 탑과 함께 있던, 사찰 감은사와 관련있다.

 

문무왕이 삼국통일을 이루고, 남은 적인 왜적을 막고자, 동해 바다 근처에 절을 세우자했고,

또한 자기가 죽어서 용이 되어 신라를 지키고자 동해 바다에다가 장사를 부탁했다.

그리하여 문무왕은 이 절 근처에다가 장사했는데 그곳이 대왕암이며,

문무왕의 아들인 신문왕2년에 절은 완성되고,

아버지의 은혜에 감사하여 이 절을 감은사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래서 감은사지 3층석탑은 홀로 바닷가에서 위치해 있다.

 

 

 

 

 

 

 

 

감은사도  불국사의 석가탑,다보탑하고 같은 형식인 쌍탑가람 배치 형식를 가지고 건설했다.

 

 

 

 

 

탑의 크기는 높이 13.4m로 생각보다 거대한 탑이다.

현대까지 도굴 당하지 않아서 최근에 탑을 해체했을때 상당히 많은 유물이 나왔는데

청동사리감, 지정십일년명 금고,청동제사리탑, 동탁사리 장엄구 등이 나왔다.

모두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경주 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있다.

 

 

 

 

 

 

 

 

 

사찰의 건물인 금당의 터이다.

 

금당의 터 아래에는 60cm 공간과 함께 배수시설이 발견되었는데,

절을 세웠을 당시 여기까지 바닷물이 올라오지 않았나 추측과 함께 문무왕의 해룡에 관한 전설과 상관있는 흔적인거 같다.

 

 

 

 

 

 

 

 

 

 

 

 

 

감은사는 그 유명한 피리인 만파식적과 관련있다.

만파식적이란 나라가 어지러울때 불면 평온을 가져다 준다는 피리인데,

 

만파식적 설화 내용은 감은사쪽으로 작은 산이 떠내려 와서 가보니 대나무가 있었다. 

이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나라가 어지러울때 마다 피리를 불어 평온을 가지고 오게 했다 는 내용이다.

 

당연하지만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지어낸 뻥이다.

 

 

 

 

 

 

 

 

 

 

 

문무대왕릉

 

 

감은사에서 조금만 걸으면 나오는 수중릉 문무대왕릉이 나온다.

근데 아시다 시피 문무왕은 화장되어 바다에 뿌려졌다고 사료에 나오기 때문에 애초에 흔적이 나올 수가 없다. 게다가 조사해본 결과 그냥 자연석이였다.

 

즉 이 바위는 문무대왕릉이 아니다.

 

 

그렇다면 저 바위에 문무왕이 잠들었다고 인식되는걸까?

저 바위가 문무왕릉이라고 인식된건 최근인 1970년대이다.

당시 괘릉이 문무왕릉이라고 알려졌는데, 실제 발굴해 보니 원성왕릉이였고,

남은 후보지를 고르니 이 바위가 문무왕릉이라고 추측되어 이 바위는 문무대왕릉이 되었다.

 

그러나 그 뒤 2번의 조사결과, 물 다 퍼내고, 초음파로 조사해도 왕의 묘지라면 있어야 할 부장품은 없고 그냥 자연석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 하여 학계에서는 현재 이 바위를 전 문무왕릉이라고 부르고 진짜 문무왕릉을 찾고 있다.

 

 

 

 

그러나 이 바위가 가치없는 것은 아니다.

 

 

 

바위를 조사결과 의도적으로 조각하여 수로를 만들고 형태를 만든것이 발견되었다.

추측컨데 이 바위는 진짜 문무왕릉은 아니지만 문무왕을 추모하는 허묘이지 않았을까?

실제로도 기록을 보면 대왕암을 통해 문무왕을 추모하거나 기리는 사료들이 많이 나오고 실제로도 오늘날 까지 이어져 문무대왕릉은 무속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