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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 경주 양동마을.

상상력사전 2020. 3. 14. 16:28

 

 

 

 

유네스코 세계유산 경주 양동마을 (Historic Villages of Korea: Yangdong)

경주 양동마을은 경주시 강동면에 위치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양반 집성촌 마을이다.

양동마을은 세계에서 볼 수없는 조선 양반 집성촌을 잘 보존하였기에,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10년에  안동 하회마을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으며,

2013년에는 세계 최고 의 모범 유산에 선정되었다. 

 

 

 

 

 

 

 

양동 마을의 시작

 

양동마을은 마을의 산인 성주산에서 청동기 시대 묘인 석관묘가 100기에 발견된 것을 보아

선사시대인 청동기 시대때 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 뒤 고려시대와 조선 초기에 작은 마을을 형성 하고 있다가,

여광 이씨인 이광호와 경주 손씨인 손소가 마을에 들어와 살게되었는데,

이광호의 후손인 이번과 손소의 장녀가 결혼하여 태어난 이언적이 조선 최고의 성리학자로 거듭나고

손소의 아들인 손중돈 또한 명성을 떨쳐 마을을 명문 양반 마을로 발전 시켰다.

이로인해 오늘날 같은 여광 이씨,경주 손씨의 양반 집성촌이 되는 양동마을이 형성 되었다.

그 뒤 양동마을은 한일합방 전까지 116명이라는 과거합격자를 배출한 명성있는 양반 집성촌이 된다.

 

 

 

 

양동 마을은 국보1점, 보물4점, 중요민속문화제12개, 경상북도 유형문화재2개,기념물1점, 민속자료 1점, 문화재 1점을 포함해 총 22점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국보 283호 통감속편.(양동 민속마을 서백당내)

보물 411호 무첨당.(양동 민속마을내)

보물 412호 향단.(양동 민속마을내)

보물 422호 관가정.(양동 민속마을)

보물 1216호 손소 영정.( 양동 민속마을 서백당내)

 

 

 

 

 

 

 

 

주요 탐방길.

가보면 암, 근데 걸어다니면 힘들껄 ㅋㅋ

 

 

 

양동마을의 주요 인물

손중돈과 이언적.

둘은 각각 경주 손씨, 여강 이씨로서 당시 성리학자로 세상에 명성을 떨쳤다.

그리하여 평범한 마을 이였던 양동마을은 이때 부터 명문 양반 마을로 탈바꿈 하기 시작한다.

 

 

 

 

 

 

 

보물 442호 관가정

조선시대 관리였던 손중돈의 저택이다.

저택의 형태는 사랑채와 안채가 연결되어 ㅁ모양의 형태를 이루는데,

가운데 마당을 중심으로 남쪽은  사랑채, 나머지는 안채로 구성된다.

 

관가정은 오늘날 까지 잘 보전되어조선 중기의 남부지방의 양반 저택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었기에,

보물 442호로 지정되었다.

 

관가정에 있던 오래된 나무.

관가정과 함께 세월을 버텼다.

 

 

 

중요 민속자료 23호 서백당( 경주 양동마을 송첨 종택)Seobaekdang

 

조선 전기인 1459년, 양동마을의 시초인 손소가 지은 조선시대 가옥이다.

서백당은 양동마을의 시작의 장소이기도 하다.

 

 

 

 

서백당은 손소의 아들 손중돈이 태어난 장소 이기도 하고,

손소의 외손자 이언적이 태어난 장소이기도 하는데,

손중돈과 이언적의 전국적인 유명세로 인해 양동마을이 발전하기 시작했으므로,

다시 말하지만 사실상 오늘날의 양동마을이 시작된 장소라고도 할 수 있다.

 

 

 

서백당은 또한 조선 전기 살림집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서 중요민속문화재 제 23호 등록되었다.

 

서백당의 명칭은 여러번 바뀌였는데

1970년대에는 월동손동만씨 가옥이였다가,

2007년에 서백당으로, 

현재는 경주 양동마을 송첨 종택으로 바뀌었다.

 

 

 

 

 

 

 

 

 

 

저택 내부에는 양동마을이 시작된 장소답게 내부에 있는 유물 또한 대단 하다.

대표적으로  국보 283호 통감속편과  보물 1216호 손소 영정이 있다.

 

 

 

 

 

보물 1216호 손소 초상

 

 

손소 초상은 손소(1433-1484)선생을 그린 초상화이다.

손소 선생은 1467년 이시애의 난을 평정해 공신에 오르고, 안동,진주목사를 거쳤다.

그 뒤 그는 풍덕 류씨 가문의 딸과 결혼을 통해 양동마을에 오게 되었는데, 그의 자손 손중돈과 외손자 이언적이 활약으로 양동마을 오늘날의 명문 양반 마을이 되었으므로,

사실상 손소는 양동마을의 시초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초상화는 가로 105cm, 세로 160cm이며 비단위에 채택을 하였다.

초상화를 보면 방치되어 떨어져나간 부분도 많지만, 그림의 색체나 윤곽, 그리고 글은 뚜렷하다.

이 손소의 초상화는 손소가 공신일때 모습을 10년후 성종 7년(1476년)에 그린것이다.

즉 당시 이 초상화를 그릴때 당시 사진기가 없었을 테니, 그려져 있던 그림을 배껴 그렸거나, 상상으로 그린 그림이다.

 

이 초상화는 조선 초기 공신도상을 대표하는 뛰어난 작품으로,

당시 시대상 미술화법을 보여주고 있어, 그 의의가 크기 때문에 보물 1216호로 지정되었다.

 

 

 

 

경상북도 기념물 8호 양동마을 향나무

 

 

서백당과 함께 해온 향나무, 서백당이 지어졌을 당시 마당에 심었던 것으로 수령 500년을 뛰어 넘었다.

 

 

 

 

경주 손씨의 사당 입구

 

 

 

 

 

 

 

보물 411호 무첨당

조선의 성리학자 이언적의 별당으로서, 조선 중기에 세웠다. 현재 여강 이씨의 종가 종택이다.

무첨당이라는 이름의 건물은 총 3채지만, 보물로 지정된 것이 이 별당으로서  손님맞이, 책읽기, 쉬기 등 여러 형태로 쓰던 장소이다.

현재  건물 내부에는 이언적 선생의 유물을 보관하고 있다.

 

 

 

 

 

 

 

 

 

 

보물 412호 향단 Hyandan

 

향단은 조선 중기 이언적이 지은 조선시대 건물로서, 현대적으로 봐도 외향이 상당히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저택이며, 일반 기왓집 형식에서 벗어난 실용적인 형식으로 지어진 건물로, 주생활을 합리화를 도모한 우수한 건물이다.

본래99칸이였는데, 6.25전쟁으로 인해 소실되어 현재 56칸만 남아있다.

현재의 향단은 1970년대 내부적으로 자재를 전부 바꾸어 수리하였다.

 

 

 

멀리서 보면 이런 사진인데, 왜 멀리서 안찍고 가까이에서 찍었을까? ㅋㅋ

 

 

 

 

 

 

 

양동 마을 옆에 흐르는 강,  이 강은 포항으로 흘러가 영일만 바닷가로 나온다.

 

 

 

 

양동 초등학교, 서당을 대신해 지었다. 주변 마을 어린이도 함께 등교한다.

 

 

 

 

이것도 무슨 문화재 였는데 못찾겠다 꾀꼬리

 

 

 

 

양동마을의 일반적인 집

유네스코로 지정되었기에, 보이는 모습은 과거 상태를 유지해야한다.

그래서 집 좀 멋지게 집고 싶어도 그렇게 못지음 ㅋㅋ .

그래서 일단 겉모습은 유지하되 뒤쪽으로는 합리성을 추구했다.

 

 

이것도 뭔 문화재였는데,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