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잡담 16

1477-1529 백제의 후손, 최초의 천하인 오우치 요시오키 일대기

일본 전국시대, 하극상이고 약육강식이며, 어제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되는 피도 눈물도 없는 지옥같은 세상 중앙 정부인 무로마치막부의 아시카가 가문의 영향력이 힘이 약하니 지방에서 반독립하여 자기가 최고가 되겠다고 서로 싸우고 싸우고 또 싸우고 싸웁니다. 그러다가 수십년뒤인 오우치 요시오키 15대 당주로 즉위하다. 1495년 오우치 요시오키는 아버지를 뒤이어 오우치 가문 제 15대 당주에 즉위 합니다. 오우치 가문은 백제 온조왕의 원손인 마지막 왕자 임성태자의 후손이며, 그는 임성태자의 28대 자손입니다. https://web.archive.org/web/20130710185049/http://www.nichiren.ac/houzennji/toyotakeifu.htm# 오우치 가문은 그가 즉위하기 전부터 강..

안중근의 흑역사- 영산전투

영산전투는 1900대 에 연해주에서 안중근 독립의병부대와 일본군이 싸운 전투 입니다. 그런데 이 전투가 안중근의 어이없는실수때문에 졌는데, 사건의 내용을 말하기 전에 이 사건을 이해하려면 당시 상황을 이해 해야 합니다. 당시는 제국주의 시기로 서양인들이 동양인들을 약육강식의 논리로 식민지화 하여 침탈했지요. 실제로 아프리카, 인도, 동남아가 식민지지배당했고 중국이 갈갈이 찢겨나갔습니다. 그래서 서양의 식민지 지배에 저항하기 위해, 같은 문화인 한중일이 맞서야한다(아시아주의) 라는 의식이 생겨났습니다. 여기에 당시 빠른 개항과 발전으로 선진국으로 향해 가고있던 일본이 이 논리를 받아드리고 선동하고 여기에 호응하던게 당시 지식인들인데, 대표적으로 일본인의 정신적 지주인 후쿠자와 유키치를 지지자로 갑신정변을 ..

일본 전국시대(센고쿠 시대)의 소개

일본 전국시대(센고쿠 시대)는 피도 눈물도 없는 하극상의 시대이다. 어제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되며,아버지가 아들을 죽이고,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는것이 당연한 지옥같은 세상. 남자로 태어나면 전쟁에서 싸워 죽는것을 미덕으로 세뇌당해 싸우다 죽으며, 여자로 태어나면 노동력 생산의 도구가 되어 인간취급이라도 받으면 다행인 취급을 받는다. 그런 세상 사람들은 살아남기위해 싸워 왔고, 그 속에서 다양한 이야기가 태어났다. 그리고 일본인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시대 1위에 선정되었다.(ㅡㅡ) 전국시대의 구분은 학문적으로 전국시대의 시작은 오닌의 난(1467년)이고 끝은 무로마치 막부가 망하는 1573년이며, 그 뒤는 일본 근세의 시작인 아즈치,모모야마시대로 넘아간다. 하지만 무로마치 막부가 망한뒤에도 진정한 난세는..

1551년-1559년, 오다가문- 오와리국 통일

피도 눈물도 없는 전국 시대, 끝이 안 보이는 지옥속에서 1508년 백제인의 후손 오우치 가문이 막부를 장악하고 최초의 천하인이되면서 부터 흩어졌던 나라들은 슬슬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다. 1534년 오다 노부나가는 오와리국의다이묘 오다 노부히데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오와리는 작은 땅이지만 일본의 3대 평야인 노비평야가 있어 생산되는 석고량이 57만석으로 오와리국보다 몇 배나 더 큰 옆동네 시나노는 석고량 41만석보다 훨씬 많이 나오는 기름진 땅이다. 석고는 전국시대때 사용했던 토지의 생산 단위이다. 토지면적이 아닌 곡물 생산량으로 환산했으며,1석고는 쌀1석은 생산 할수는 토지를 말하는데 쌀1석이란, 1명의 성인이 1년간 먹을수 있는 쌀의 양을 말한다. 가문의 석고량이 가문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의미했다고 ..

1573년, 미카타가와라전투- 도쿠가와,오다 가문 연합군 1만1천vs 다케다 가문 2만7천

미카타가와라 전투는 1573년 1월에 오다, 도쿠가와 연합군과 다케다 가문과의 도토미(시즈오카) 지역에서 싸운 회전들을 가리킨다. 오다 노부나가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인생 최대의 위기였던 사건이였다. 배경 일본 최강 가문 미요시 가문의 몰락과, 오다 노부나가의 상락 노부나가의 선구자라고 재평가받고 있는 미요시 나가요시에 의해, 그동안 일본을 지배하던 무로막치 막부는 미요시 가문의 세력권 안에 들어간다. 미요시 나가요시의 사후 미요시 가문은 쇠퇴하기 시작했고, 이를 기회로 무로막치 막부의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테루는 쇼군의 권위를 회복시키고자 한다. 이러한 행동에 1565년에 미요시 가문의 중신인 미요시 삼인방은 막부를 기습해, 쇼군 아시카가 요시테루를 살해되고 정권은 뒤집는데 이를 에이로쿠의 변이라고 한다..

1561년 오케하자마 전투 (오다 가문 3천 vs 이마가와 가문 3만)

지난이야기 1551년 아버지 오다 노부히데의 뒤를 이어 17세의 나이로 오와리의 다이묘가 된 오다 노부나가 하지만 오다 노부나가의 오다 가문은 분가로서 격이 떨어졌고, 노부나가가 가문을 이었을때는 가문이 쇠퇴되어있었으며, 노부나가 성향 자체가 혁신적이고 합리적인 성향이라 보수적인 지배층들의 불만을 많이 받았다, 그리하여 오와리는 내분과 분열이 일어났지만, 8년뒤인 1559년, 노부나가는 오와리통일을 성공한다. 그러나 1561년 남쪽의 미카와, 도토우미, 스루가 3개국 지배자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북쪽의 다케다 가문, 동쪽의 호조가문과 삼국동맹을 맺고, 올인병력 3만을 이끌고 오와리를 침공한다. 당시 이마가와의 미카와,스루가,도토우미3국의 석고량은 60-70만으로 노부나가의 오와리 석고량 57만과 비슷하지만..